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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타자(他者)의 땅에서 펄럭이는

펄럭이는 게 깃발뿐이랴! 마음도 나부낀다. 미풍에도 흔들리고 돌풍이 몰아치면 갈기갈기 부서진다. 찢어진 깃발은 새로 사서 꽂으면 되지만 찢긴 가슴은 꿰매기 힘들다.     정든 고향 산천 뒤로 하고 천리 만리 타향길에 오르면 모든 것이 낯설고 물 설다. 첫발을 디딘 ‘나의 미국’은 중서부 지역이라서 인종차별이 덜했다. 이웃들은 다정하게 대해주고 친절했다. 자신보다 못나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는 쉽다. 경쟁의 대상이거나 자기 구역을 침해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서양의 입장에서 동양이 타자고 동양의 관점에서 서양이 타자다. 타자(他者)는 자기 외의 사람 또는 다른 것을 뜻한다.   ‘타자화’는 나와 다른 인종이나 상대의 이질적인 면을 부각해 열등하게 보이게 함으로서 거리를 두는 것을 말한다. 사회학에서 타자화는 특정 대상을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분리된 존재로 부각시키는 말과 행동, 사상, 결정 등의 총집합을 의미한다. 동일자의 반대 개념인 ‘타자(the Other)’는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계층 및 인종을 일컫는 단어다.     백인이 타자(유색인)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자신의 인종적・문화적・도덕적・지적・ 기술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는 말은 설득력을 가진다. 식민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열등한’ 타자가 필요하다. 우월감을 확보함으로써 타자의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공동체에서 소외되면 스스로 목소리를 잃게 되고 고립되어 끼이지 못하게 된다.   인류를 지역과 신체적 특성에 따라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구분한다.     디올 앰버서더이자 아스트로(ASTRO) 멤버인 차은우는 백인을 능가하는 헌칠한 키, 백옥 같은 피부, 조각 같은 비주얼로 이집트 디올 패션쇼의 스타로 떠올랐다. 황인종으로 부르기에는 피부가 너무 하얗고 뽀얗다. 인종 구별을 달리 해야 하나.   시민권 받을 때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머리색 블랙, 눈 색깔 다크 브라운, 까지는 이의가 없었는데 피부색을 ‘옐로우’로 기재하기에는 스물셋 내 얼굴색이 너무 하얗다, 그렇다고 동양인을 ‘화이트’로 기재할 수 없어 심사관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다가 ‘아몬드’로 낙착됐다. 회화에서 아몬드색은 붉은 기가 살짝 도는 브라운 계열의 색이다. 내 피부는 크림색에 가깝다.     뉴욕 근교에서 평생토록 목사로 시무했던 리사 증조 할아버지는 아이리쉬계 이민자다. 낯선 얼굴이 집 앞을 지나치면 ‘미국 사람 지나간다’라고 말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진다. 축포를 터트리며 성조기를 달기에는 뭐하고 태극기가 눈 앞에 펄럭이며 가슴이 먹먹하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유치환의 ‘깃발’   평생토록 타국의 깃발을 낯선 땅에 꽂을 수 없는 자들은 조국의 깃발을 품고 산다. 달이 뜨는 날이나 별이 지는 밤, 영원한 타자로 떠돌이 별이 되더라도, 그리운 하늘 보고픈 얼굴이 있는 땅에서 깃발은 나부낀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타자 백인종 황인종 인종적 문화적 인종 구별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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